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하는 기준은 뭘까? 여기에 대해서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칼 포퍼는 매우 흥미로운 기준 하나를 제시한다. 이 기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퍼의 반증주의에 대해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포퍼의 반증주의
포퍼는 과학 활동은 기본적으로 검증이 아니라 반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검증은 어떤 경험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어떤 명제가 '옳다고' 판명하는 것을 뜻하고, 반대로 반증은 어떤 경험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어떤 명제가 '틀리다고'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포퍼는 어떤 과학적인 법칙과 관련된 가설에 대해서는 검증은 불가능하고 반증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서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법칙적인 가설이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 가설을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하게 검증하는 게 가능할까? 실제로 이 가설을 검증하려면 모든 백조를 검사를 해봐야 할 것이다. 벌써 이것도 되게 힘들어 보이지만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해서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백조들을 조사해봤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이 가설이 과연 검증이 될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혹시 발견하지 못한 백조가 있을 수도 있고, 지구 밖에 다른 행성에 백조가 있을 수도 있고, 또 과거에는 빨간 백조 한 마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져서 없는 것일 수 도 있고, 그러니까 미래에는 얼마든지 희지 않은 백조가 발견될 수 도 있고 이렇게 그 법칙이 적용돼서 우리가 검사를 행해야 하는 사례가 무한히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검사하고 완벽하게 검증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반대로 반증은 매우 쉽다. 그냥 희지 않은 백조 한 마리만 발견하면 되니까. 그래서 포퍼는 과학은 기본적으로 어떤 하나의 가설을 완전하게 검증하면서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가설들을 계속해서 반증해 나가면서 차례차례 발전하는 것이다라는 과학발전의 모델을 제시한다. A라는 가설이 있었으면 그 가설을 반증하는 더 우월한 B라는 가설이 등장하고 또 그 B라는 가설을 반증하는 더 우월한 C라는 가설이 등장하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과학이 발전을 거듭한다는 거다.
반증가능성
이렇게 포퍼는 과학에서 반증이 갖는 역할을 매우 핵심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포퍼가 보기에 어떤 가설이 경험적으로 반증 가능하지 않으면 그건 과학적인 가설이 아니다. 과학적인 가설이라면 어떤 경험적인 관찰이 행해져야 그 가설이 반증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데 예를 들어서 아까 봤던 그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가설의 경우에는 충분히 어떤 경우에 그 가설이 반증되는지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철학적이거나 신학적인 가설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경험적으로 반증 가능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서 '신은 전지전능하다' 이런 가설에 대해서도 여기다 대고 어떤 경험적인 관찰을 들이대야 이 가설을 반증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보니깐 조금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포퍼가 보기에 어떤 틀릴 수 없는 완벽한 진리로서 주장되는 그런 지식은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다. 과학적인 지식은 그 본질상 얼마든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포퍼에 따르면 과학적인 합리성의 핵심적인 정신은 '내가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완벽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그런 교조적인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이론이 얼마든지 언제든지 틀릴 수도 있다'는 그런 겸손한 인정에 있는 것이다. 물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여러 반증들을 견뎌낸 그런 이론들은 좋은 이론이고 그런 이론을 과학에서 주류이론으로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서 충분한 믿음을 갖는 것은 과학적인 합리성 안에서 당연히 용인이 될 것이다.
반증주의에 대한 반론
그런데 이 포퍼의 반증주의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반론이 하나 있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반증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라는 반론이다. 예를 들어서 아까 그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가설을 반증하는 빨간 백조 한 마리가 발견됐다고 치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얼마든지 토를 다는 게 가능하다. '우리가 아직 백조에 대한 이론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빨간 백조랑 진짜 백조들이랑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일 뿐이지 우리가 백조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을 충분히 발전시키면 그 기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얼마든지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서 기존의 뉴턴 역학이 대체되어가는 그 과도기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그 뉴턴 역학을 반증하는 것처럼 보이는 관찰 사례들은 사실 겉으로만 그런 것 일 뿐이고 우리가 기존의 뉴턴 역학만 잘 발전시키면 상대성이론을 굳이 도입하지 않고도 그 반증 사례들을 잘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믿었다. 이러한 반론을 포퍼도 부분적으로 인정을 한다.
반론에 대한 반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퍼는 '검증보다는 반증이 논리적으로 봤을 때 훨씬 더 강력하다'라는 입장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또한 포퍼는 '우리가 너무 그런 완벽하고 완전무결한 검증이나 반증에만 집착해서는 과학에 대한 바람직한 관점을 취득하지 못한다'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니까 과학자 공동체가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얼마든지 어떤 가설이 어떤 경험적인 관찰에 의해서 반증된다라는 그 기준들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제시할 수가 있는데 거기다 대고 '아 그거는 완전한 반증이 아니니깐 소용이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과학적인 합리성의 본성을 제대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다. 왜냐하면 과학적인 합리성의 본질은 틀릴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에 있으니까 말이다.
마무리
포퍼가 이렇게 과학과 비과학의 구별 기준을 제시했다고 해서 포퍼가 과학적 지식만이 유의미하고 비과학적 지식은 무의미하다 라고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서 포퍼가 과학의 본성에 대해서 수행한 이런 분석도 그 자체로는 과학적인 지식은 아니다. 경험적으로 반증 가능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포퍼의 분석을 통해서 충분히 지적으로 유의미한 성찰과 교훈들을 얻을 수 있다. 포퍼의 반증주의가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도덕적인 핵심은 우리가 지식에 대해서 조금 더 열려있고 겸손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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