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는 비단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제품들이 우리의 딴짓을 유발하도록 설계되어 나온다. 우리는 기업이 날로 진화하는 우리의 필요에 맞춰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만 과연 그 결과물이 우리에게서 최선의 모습을 끌어내는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 이러한 시대에 딴짓을 다스릴 줄 모르면 뇌가 시간을 낭비시키는 주의 분산물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딴짓을 유발하는 요인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고 그 요인을 잘 관리하는 건 우리 몫이다.
원하는 삶을 살려면 '바른'행동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나를 탈선시키고 후회하게 하는 '나쁜'행동을 '안'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딴짓을 하지 않고 본 짓에 집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니르 이얄은 뇌 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행동경제학 등 5년 동안 조사한 핵심 연구 자료를 통해 집중력을 지배할 수 있는 행동 설계 4단계 비법을 제시한다.
1) 내부 계기 정복
2) 본 짓을 위한 시간 확보
3) 외부 계기 역해킹
4) 계약으로 딴짓 방지
본 짓은 우리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에 다가가게 하는 행동이다. 딴짓은 우리가 꿈꾸는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다.
본 짓이 든 딴짓이든 모든 행동은 내, 외부 계기에 의해 발생한다.
내부 계기는 내면에서 오는 신호다. 배가 꼬르륵거리면 우리는 간식을 찾는다. 추우면 외투를 입는다. 슬프거나 외롭거나 답답하면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게 위로받기 위해 전화를 건다.
외부 계기는 주변에서 오는 신호다. 예를 들면 이메일이나 뉴스를 확인하게 만드는 '띵'소리, 전화를 받게 만드는 벨 소리다. 옆에 와서 말을 거는 동료처럼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존재만으로도 스위치를 누르게 만드는 텔레비전 같은 사물 역시 외부 계기가 된다.
1)내부 계기를 정복한다
진짜로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수백 년간 보상과 처벌이 동기를 유발한다고 믿었다. 공리주의를 창시한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자연이 인간을 두 군주의 지배하에 놓았으니 바로 고통과 쾌락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동기는 우리가 한때 생각했던 것만큼 쾌락과 깊은 관련이 있진 않다.
우리가 쾌락을 좇는다고 생각할 때 실제로 우리를 움직이는 건 갈망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이를 잘 표현했다. "우리가 말하는 쾌락은 육신의 고통과 영혼의 고뇌가 없는 상태다."
쉽게 말해 불편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모든 행동의 근본 원인이고 나머지는 근접 원인에 불과하다.
텔레비전, 정크 푸드, SNS, 담배, 비디오 게임을 탓하지만 그건 모두 딴짓의 근접 원인에 불과하다.
스마트폰이 딴짓의 원흉이라는 말은 만보기가 미친 듯이 계단을 오르게 만드는 원흉이라는 말처럼 문제가 있다.
딴짓의 근본 원인을 처리하지 않으면 뭘 해도 또 딴짓을 하게 된다. 문제는 딴짓 그 자체가 아니라 딴짓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딴짓이 불건전한 현실도피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불편한 내부 계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건전한 본 짓을 추구할 것이냐, 나를 망치는 딴짓을 추구할 것이냐가 갈린다. 사람에 따라서는 SNS나 텔레비전, 폭음, 마약 복용 등이 도피처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포인트 모으기, 만보기나 야근 같은 것들도 될 수 있다. 따라서 현실을 도피하려고 하는 진짜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야만 그것을 다스릴 수 있고 부정적인 충동에 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다.
시간 관리는 고통 관리다
이제 우리는 딴짓을 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스마트폰이나 만보기 같은 것들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라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딴짓 때문에 시간이 낭비된다면 그 시간 관리는 곧 고통 관리를 통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태생적으로 만족하지 못하게끔 만들어졌다. 우리는 절대로 삶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감은 애초에 오래 유지될 수 없다. 기나긴 진화 과정에서 우리 뇌가 거의 항상 불만족하도록 만들어진 이유는 만족과 쾌락이 영원한다면 지속적으로 더 나은 편익이나 발전을 추구할 유인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족감이 오래가지 못하게 하는 네 가지 심리적 요인
1) 권태
2) 부정 편향 or 비관주의
3) 반추, 즉 나쁜 경험을 자꾸 곱씹는 것
4) 쾌락 적응
하지만 불만과 불편이 뇌의 기본 상태라고 해도 우리는 그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오히려 동기 유발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만족을 모르고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손에 넣으려는 욕망이야말로 우리가 폭군을 몰아내게 하는 에너지원이요, 세상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구하는 기술을 개발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지구를 넘어 우주를 탐색하게 하는 연료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불편에 지배당하지 않고 대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내면에서 비롯되는 딴짓에 대응하기
딴짓을 유발하는 불편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너선 브리커가 제안한 재해석을 통해 현산을 다르게 보게 하는 수용전념치료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이하 ACT) 기법을 소개한다. ACT의 핵심은 자신의 갈망을 인지하고 수용해 건전하게 처리하는 요령을 배우는 것이다. ACT는 충동을 무조건 억제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관찰하면서 자연스레 사라지게 한다. 충동을 억지로 억제하면 안 되는 이유는 정신적 절제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곰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보라. 그러면 그 빌어먹을 것이 1분마다 떠오를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욕망을 거부하려 들면 도리어 욕망을 되새기다가 결국 항복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이로 인해 원치 않는 행동을 저지르기 쉽다. 이는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에서도 말하는 예기불안, 과잉의도(과잉욕구), 과잉투사에서 비롯되는 불감증, 수면장애 등의 신경질환과도 연관된다. 프랭클은 예기불안은 역설의도로 좌절시켜야 하고, 과잉의도(과잉욕구), 과잉투사는 역투사의 방식으로 좌절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되돌아와서, 프랭클의 역설의도, 역투사와 같은 방식처럼 어떤 욕망은 그것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만 해도 설사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할지언정 어느 정도 조절은 가능하다. 니르 이얄은 내부 계기, 과업, 기질 이렇게 세 가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한다.
내부 계기를 재해석한다
1단계)딴짓에 선행하는 '불편'에 초점을 맞춰 내부 계기를 파악한다. 그 딴짓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이 들거나 뭔가가 간절해지거나 마음이 진정되지 않거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불편을 직시해야 한다.
2단계)계기를 기록한다. 딴짓을 유발하는 내부 계기를 인지했고 그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그 행동을 눈치채는 즉시 기록한다. 딴짓 추적표를 활용하면 좋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포착하는 능력이 좋아지면 그걸 다스리는 능력도 좋아진다.
3단계)감각을 탐색한다.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그 느낌을 충분히 관찰해라
4단계)'넘이점'을 인식한다. 넘이점은 일상에서 이것이 저것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말한다. 즉 본 짓을 하다가 딴짓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딴짓의 함정을 피하는 데는 '10분 원칙'이 효과적이다. 넘이점이 곧 올 것 같을 때에 10분간 충동을 불에 태워서 본 짓을 한 다음에 넘이점을 넘긴다면 그 후에는 여전히 하고 싶은 행동(딴짓을 포함해서)을 해도 좋다. 그런데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넘이점을 넘기면 딴짓을 잊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과업을 재해석한다
이언 보고스트에 따르면 재미는 즐거움을 많이(혹은 전혀) 수반하지 않아도 여전히 재밌다고 한다. 힘든 일도 놀이가 될 수 있고 꼭 즐겁지 않은 놀이도 우리를 불편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알다시피 불편은 딴짓의 핵심 연료다. 우리는 불편을 느낄 때 딴짓을 하는 경향이 있으니 힘든 일을 재밌는 일이라고 재해석하면 큰 힘이 된다.
재미와 놀이가 꼭 즐거워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를 집중시키는 도구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그만이다.
재미란 "익숙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처리했을 때 생기는 결과"다. 그러므로 과업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고통에서 달아나려고 하거나 보상을 이용해 동기를 유발하려고 할 게 아니라 익숙한 일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도전 과제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주의를 깊이 기울여야 한다. 그런 도전 과제가 있을 때 일에서 색다른 맛이 느껴져 관심을 집중하고 딴짓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먼저 사물에 면밀한 관심을 기울여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고 왠지 바보짓처럼 느껴질 정도여도 괜찮다. 예를 들어 잔디를 깎는 과업을 한다고 했을 때 잔디깎이의 동선을 최적화하거나 자신의 최단 기록을 경신하는 일종의 가상의 놀이터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남들이 볼 때 전혀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일에서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재미란 무언가에서 남들이 못 보는 가변성을 찾는 것이다. 따분함과 단조로움을 돌파해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기질을 재해석한다
우리를 딴짓으로 몰아붙이는 불편을 다스리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딴짓을 하는 동안 '기력이 소진됐다'라는 구실로 내 행동을 정당화하는 패배주의적 믿음을 박살 내야 한다. 우리는 자아가 고갈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나태함의 완벽한 핑곗거리였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런 사실은 없고 오히려 의지력이 유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아고갈의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즉 의지력은 고갈되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중요하다. 자신을 자제력이 약한 인간이라고 부르는 건 자멸에 이르는 길이다. 자기 위로를 연습하자. 친구에게 말하듯이 자신에게 말하자. 자기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회복력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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