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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니체

니체 : 초인 (3-2)

by 글랜필드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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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 [철학/니체] - 니체 : 초인 (3-1)  글에 이어서..

 

니체 : 초인 (3-1)

"우리의 쾌활함이 의미하는 것. -근래의 최대의 사건은 "신이 죽었다"는 것, 그리스도교의 신에 대한 믿음이 믿지 못할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이미 유럽에 그 최초의 그림자를 드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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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초인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신 혹은 초월적 존재로부터 찾지 않는다.

초인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은 삶을 뛰어넘는 또 다른 세계, 즉 초월적인 것을 거부하고

이 지상의 삶을 유일한 삶으로 받아들이고, 이 지상의 삶에서만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초인이 등장하려면 필연적으로 신이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신이 죽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이 지상에서는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신이 죽지 않는다면 신이 인간의 존재의 의미, 즉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 모두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죽어서 인간의 존재의 의미, 즉 살아가야 하는 궁극적인 의미가 없다면

이제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가 출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신이 죽고 초인이 등장해야만 한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136p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게 되기를 바란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4부 차원 높은 인간에 대하여 504p

 

니체는 이러한 '초인'을 "대지의 뜻"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니체가 말하는 '대지'는 '지상'과 인간의 '몸'을 모두 뜻한다.

신이 살아있을 때는 '대지', 즉 '지상'과 '몸'은 경멸받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지상'은 '하늘나라'의 그림자일 뿐이기 때문에 경멸받았고,

'몸' 또한 '영혼'에 밀려 취급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경멸받았다.

그러나 신 죽음 이후에는 이원화되었던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인간에게는 오직 '지상'과 '몸'만이 남게 된다.

이제 인간이 충실해야 하는 건 저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 지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인은 "폄하되고 부정되었던 이 지상을, 이 대지를 최고의 가치척도"로 생각한다.

초인은 신이 살아있을 때처럼 이 지상을 "부정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인은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초인이 이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이여, 간곡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그들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독을 타서 퍼뜨리는 자들이다.

그들은 삶을 경멸하며 말라죽어 가고 스스로 중독된 자들로, 대지는 이들에게 지쳤다.

그러니 그들이야 죽든 말든 내버려 두라! 지난날에는 신에 대한 불경이 최대의 불경이었다.

그러나 신이 죽었으므로, 신에 대해 불경을 저지른 자들도 함께 죽었다.

이제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대지에 불경을 저지르고,

탐구할 수도 없는 것의 뱃속을 대지의 뜻보다 더 높이 존중하는 것이다!

일찍이 영혼은 몸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최고의 경멸이었다.

영혼은 몸이 마르고 추해지고 굶주리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여 영혼은 몸과 대지로부터 달아나고자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1부 머리말 16p

 

그러나 차라투스트라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초인이 아니라 '말종 인간'을 택한다.

말종 인간은 초인과 정반대 되는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이다.

그들은 니체가 인간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파악한 "동정"을 행하고, 그리고 지배하려는 욕구의 부재, 즉 힘에의 의지가 부재하고, 또 특별한 것을 없애버리려는 평등을 향한 의지로 가득 차 있으며, 또 그들은 낮에 느낄 수 있는 쾌락도 밤에 느낄 수 있는 쾌락도 조촐하게만 즐길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넘쳐흐르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또 건강을 알뜰살뜰하게 챙긴다.

그렇게 말종 인간은 차라투스트라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1부 머리말 24p

 

초인은 스스로를 경멸하며 그것을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

그러나 말종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를 경멸할 줄 모르는 인간, 나아감 없는 인간,

힘에의 의지가 상실된 인간, 즉 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추해진 인간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한탄한다.

 

"슬프다! 인간이 더 이상 별을 낳지 못하는 때가 오겠구나!

슬프다!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경멸스럽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1부 머리말 22p

 

초인은 말종 인간과는 반대로 절대적인 가치로부터 흘러나오는 "삶의 목표, 가치와 의미"에서 벗어나

자신이 "설정한 삶의 목표를 척도로, 모든 것의 가치와 의미를 평가하는 평가자이며 창조자"이다.

니체는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낙타-사자-아이라는 구도로 설명한다.

먼저 낙타는 기존에 있던 가치를 묵묵히 짊어지고 가는 자이다. 낙타는 짊어진 짊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인내심 많은 정신은 이 모든 무겁기 그지없는 짐을 짊어지고 그의 사막을 달려간다.

가득 짐을 실은 채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1부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36p

 

그러나 "고독하지 그지없는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정신은 사자"가 된다.

사자는 무거운 짊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쟁취하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주인이 되려면 사막을 지배하는 용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 니체는 그 용의 이름을 "너는 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묵묵히 "너는 해야 한다"는 명령을 짊어졌을 때는 그것과 결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자유로운 정신이 되기 위해서는 이 "너는 해야 한다"는 용과 대결해야만 한다.

그 용은 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가치는 이미 창조되었다. 모든 창조된 가치, 그것이 바로 나다.

진실로 말하노니 '나는 원한다'라는 요구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용은 이렇게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1부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37p

 

사자는 자유를 쟁취하고 의무 앞에서도 신성하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가치를 창조할만한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 반항만 하는 정신은 필연적으로 허무로 귀결된다.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는 자는 또 다른 가치를 창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그저 반항을 통해 자유를 획득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니체는 사자 다음의 단계를 이야기한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게를 상실한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나는 그대들에게 세 단계 변화에 대해 말했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었고, 낙타는 사자가 되었으며, 사자는 아이가 되었는가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1부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38p

 

아이의 단계에 와서야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사자가 할 수 없었던 "나는 원한다", 즉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너는 해야 한다"에 묵묵히 따르는 정신은 낙타. 이 "너는 해야 한다"와 일전을 벌여 자신의 자유를 획득하는 건 사자,

그리고 "너는 해야 한다"로부터 벗어나

"나는 원한다"라는 자기 의지의 능력을 긍정하는 것이 아이의 단계이고 이를 '초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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