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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니체

니체 : 신은 죽었다 (2)

by 글랜필드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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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1881년 가을에 남긴 한 메모를 통해서 "서양 지성사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는다.

"신은 죽었다! 그것도 우리가 죽였다! 
이런 감정, 지금까지 세계가 지녔던 가장 강력하고 성스러운 것을 없앴다는 느낌은 인간들에게 다시 퍼질 것이다.
그것은 엄청나고 새로운 느낌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는 나중에 어떻게 스스로를 달랠 것인가!
어떻게 스스로를 정화할 것인가!"
-(니체전집 12 / KGW V 2, 14[26], 663쪽)

"신은 어디로 갔나? 우리가 무슨 일을 한 것인가? 우리가 바다를 다 들이 마신 것인가?
주위를 둘러싼 모든 지평선을 다 지워버리는 데 우리가 사용한 것은 도대체 어떤 스펀지였나?
어떻게 이 영원하고 뚜렷한 선을 닦아내는 데 성공했나?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선과 척도가 이 선으로 환원되었고,
이 선에 따라 모든 삶의 건축가들이 집을 지었고,
또 이 선 없이는 도대체 어떠한 전망도, 어떠한 질서도,
어떠한 건축술도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니체전집 12 / KGW V 2, 14[25], 662쪽)

여기에서 니체가 말하는 신은 "서양의 형이상학"과 그것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교의 신"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평선"은 '서양의 형이상학'을 탄생시킨 이분법적 세계관을 의미한다.
"서양 형이상학"의 출발점인 플라톤은 이데아와 현상의 세계를 구분했다.
그리고 니체 이전까지 플라톤에게 영향을 받은 서양의 거의 모든 철학과 신학은 세계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전자는 '존재'로 후자는 '비존재'로 사유해왔다.

데카르트의 연장된 사물/생각하는 사물과 무한자, 스피노자의 소산적 자연과 능산적 자연, 칸트의 현상과 물자체,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표상과 의지는 형이상학을 탄생시킨 서양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건 "철학적-종교적 형태로 전개된 형이상학"적인 신, 또 그것을 탄생시킨 '이분법적 세계관'의 종말이었다.

그리고 니체는 플라톤의 이분법적 사고가 그리스도교를 등에 업고 서양 전체 사고에 파고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선악의 저편> 서문에서 그리스도교를 "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플라톤의 철학을 대중을 위해 보다 쉽게 보급했던 것이 그리스도교라는 것이다.

이렇게 니체가 보기에는 서구 세계를 지배한 건 바로 이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그로부터 탄생한 형이상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1881년 가을에 써놓은 메모에서 세계를 둘로 갈라놓는 '지평선', 또는 '선'이라는 개념을 여러 번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지평선'과 '선'을 지워버렸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런 니체의 메모는 <즐거운 학문> 125절에 '광인'이라는 부제 아래에서 보다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절에서는 아까 메모에 없었던 '태양'이 추가된다.

여기에서 태양은 '신'을 의미하는데 이 '신'은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정해주는 '절대적 가치'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절에서는 세계를 두 가지로 갈라놓는 지평선, 즉 '이분법적 세계관'과 방향을 결정해주는 태양, 즉 '절대적 가치'가 동시에 말해지고 있다. 니체는 먼저 지평선이 지워졌다고 말한다.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즐거운 학문 125절

이렇게 태양과 멀어지게 되어서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지구는, 어떠한 기준도 갖지 못한 채 허무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게 허무주의는 "최고가치들이 탈가치화" 되면서 발생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무한한 허무를 통과하고 있는 것처럼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즐거운 학문 125절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통해서 니체를 가장 심각하게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니체가 신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1881년에 쓴 메모와 <즐거운 학문> 125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니체는 분명히 '신이 죽었다는 사실'만을 적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 니체는 이미 유럽이 신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많이 느끼고 있었고,
또 이 신이 죽은 뒤에 찾아오는 허무주의의 귀결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에서도 확인했기에
니체는 필연적으로 유럽에게 불어닥칠 엄청난 공포, 즉 허무주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니체의 "신이 죽었다"는 도래할 허무주의에 대한 하나의 경고였던 셈이다.
그래서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광인은 절대적 가치가 사라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다급하게 '신'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신의 죽음 이후에 오는 허무를 알지 못했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풀려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광인은 신을 죽인 뒤에 오는 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신을 죽였다는 "행위의 위대성"
우리가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광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왔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방황 중이다.
이 사건은 아직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지 못했다. 천둥과 번개는 시간이 필요하다.
별빛은 시간이 필요하다. 행위는 그것이 행해진 후에도 보고 듣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이 행위는 아직까지 가장 멀리 있는 별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바로 그들이 이 짓을 저지른 것이다!"
-즐거운 학문 125절

태양이 갑자기 사라져도 지구는 8분 동안 없어진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또는 태양에서 지구로 빛이 도달하려면 8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광인이 봤을 때 신은 죽었지만
신이 죽은 결과는 아직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언젠가 반드시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현대인들은 이러한 신-죽음 즉 절대적 가치의 붕괴 속에서 허무를 느끼고 있다.
니체의 동시대인들은 이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비로소 우리에게 신 죽음에 대한 의미가 드러난 것이다.

이제 인간은 모든 가치(태양)로부터 떨어져 공허한 우주에 던져졌다. 니체 동시대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이제 우리는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니체는 허무의 감정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가치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상을 제시한다.
바로 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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