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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톨스토이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해설

by 글랜필드 2021.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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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줄거리를 안 보신 분 들은 여기 링크에서 보고 오시길 바랍니다

2021.08.10 - [문학/톨스토이] -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줄거리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줄거리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굉장히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

glenfield.tistory.com

 

해설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실 안나가 아니라 톨스토이가 자기의 분신으로 설정하는 레빈이라는 청년이다. 그 청년의 성장 과정이야 말로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다시 스토리를 보자면, 레빈은 스테판의 처제인 키티에게 아주 마음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키티에게 청혼을 한다. 그러나 키티는 레빈이 아닌 브론스키를 흠모하고 있었다. 그래서 브론스키가 자기에게 청혼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브론스키는 안나를 좋아한다. 이렇게 물리고 물리는 상태인 것이다. 브론스키가 안나와 내연관계가 되자 키티는 너무나 절망한다. 키티는 게다가 레빈의 청혼도 거절한 상태였다. 너무나 힘든 그녀는 병이난 그녀는 독일 온천장에 가서 그 병을 고치고 러시아로 돌아온다. 요양을 하고 돌아오던 중 키티는 레빈을 길가에서 만나게 된다. 레빈이 이때 키티에게 다시 청혼을 하고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때부터 둘은 결혼을 하고 이상적인 삶을 향해서 나아간다. 정리를 하면 이렇다.

안나 + 브론스키 -> 파국을 향해 가는 커플

스테판 + 돌리 -> 변화도 성장도 없는 커플

레빈 + 키티 -> 성장하는 커플

 

소설의 유명한 첫 문장인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는 문장에 행복 대신 성장을 대입해 본다면 "모든 성장하는 사람은 엇비슷하지만 성장하지 않는 사람은 제각기 나름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성장하지 않는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을 먼저 살펴보고 그다음 성장하는 커플인 레빈과 키티 커플에 대해 알아보자.

 

안나 + 브론스키 -> 파국을 향해 가는 커플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의 아름다운 외모에 이끌려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는 톨스토이가 가장 싫어하는 조건이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발전이 여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두 아름답고 잘생긴 남녀가 기차역에서 만나서 호감을 갖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된다. 여기에 뭐가 잘못된 것이 있을까. 톨스토이에 답은 이렇다. 그 사랑은 욕구를 충족하는 그런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욕구 충족에서 출발한 사랑은 더 이상의 성장이 없다. 욕구 충족에서 오는 행복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법이고 그 행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안나는 더욱더 브론스키에게 집착을 한다. 그러나 무언가에 집착을 하거나 소유하고자 할수록 반대로 그것은 오히려 멀어지게 된다. 안나는 브론스키와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의 사랑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못 얻을 때는 브론스키를 증오하게 된다. 브론스키는 또 안나는 자기에게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안나가 짐스러워지고 증오하게 된다. 그래서 브론스키는 그녀에 대해 식어가는 자기감정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를 증오하고, 자신을 증오하고,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절망 끝에 안나는 죽음을 택하고 만다. 즉, 안나의 자살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 아니라 증오로 인한 자기 학대였던 것이다. 이 커플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사랑에 성장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나는 변함없는 사랑을 원한다. 그것은 순리에 저항하는 것이다. 순리에 역행한다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만난 장소도 기차역이고 자살한 장소도 기차역이다. 이 것이 말해주는 것은 안나와 브론스키는 단 한 발자국도 더 멀리 못 나가고 처음의 그 사랑 안에서 그냥 그대로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 것이다. 

 

레빈 + 키티 -> 성장하는 커플

결혼 초기, 보통의 부부처럼 레빈과 키티도 갈등에 직면한다. "내가 생각했던 결혼은 이게 아닌데,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여성이 이 여성일까"하는 불만, 의심, 질투, 싸움도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소통을 하고 이상적인 가정, 공감하는 가정, 기쁨이 있는 가정으로 성장하게 된다. 레빈이 성장하는 단계를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몰입, 소통, 죽음의 기억이다. 이 3가지는 다 얽혀있다. 

 

몰입

풀베기에 몰입한 레빈

몰입이란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집중 상태이다. 레빈은 이 몰입을 「안나 카레니나」의  최고의 명장면인 풀베기에서 체험을 하게 된다. 레빈은 지주이다. 그래서 영지 경영에 혁신을 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농부들과 자신 사이에 벽을 허물기가 쉽지가 않았다. 공부도 해보고 노력도 해보지만 영지의 상황은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레빈은 농부들과 함께 직접 풀베기를 하기로 한다. 단순한 취미 혹은 농부 체험과 같은 차원이 아니라 레빈은 진심으로 농부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 풀베기 과정에서 그는 자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 책에서 말한다. "레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베었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30분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몰입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는 것이다.

지주라는 신분을 잊은 채 풀베기에 깊이 몰입한 레빈. 그것은 거창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농부들과 함께 일하고자 시작한 풀베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풀베기에 더 몰입하면 할수록 자아가 해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에서 말한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것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나감에 따라 더욱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때에는 낫 자체가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기라도 하듯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되어 갔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이 상태가 되면 행위의 주체자는 없다. 그냥 그 행위가 행위 자체의 논리에 따라 이어질 따름인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자아 해방이 행복을 선사했다는 것이다. 레빈이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로소 외부와, 타자와, 세계와 교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농부들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영주인 레빈이 자기들과 같이 풀베기를 하면서 일체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아는 것이다. 레빈은 그의 형보다 그 농부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한 유대감이 형성된 것이었다.

 

몰입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이 링크를 클릭 ☞ 2021.07.22 - [자기계발]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몰입, flow

 

소통

「인생의 길」에서 톨스토이는 말했다. "이승에서 인간이 얻는 최고의 행복은 사람들과의 융합과 일치이다." 사람들과의 융합과 일치는 공감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보통 소통의 1차 도구는 언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언어라는 것은 소통의 적절한 도구가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언어는 많은 경우에 거짓이라는 말 까지도 서슴지 않게 했다. 말은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소통은 아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소설을 보면 오롯이 거짓된 대화를 하는 사람들만이 말로 대화를 한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끊임없이 말을 한다. 끊임없이 말을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말이 많아지면 거짓말도 많아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진정하게 대화, 소통, 교감을 하는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말을 자제하고 거의 안 한다. 그리고 듣거나 보는 것에 집중한다. 침묵 속의 응시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키티와 레빈의 침묵의 응시

책 내용 중 결혼을 앞두고 불안에 빠진 커플의 교감 상황 중 "레빈은 키티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러자 그는 그 눈빛을 통해 그녀도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의 그 감정은 어느 틈에 그에게로 옮아갔다. 그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밝고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톨스토이는 진정한 공감은 반드시 퍼져나간다고 믿었다. "키티의 얼굴에서 타오르고 있던 기쁨의 불꽃은 회당 안의 모든 사람에게 옮은 것 같았다." 즉, 긍정적인 공감은 주변에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교감은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소통 당사자들의 차원을 넘어서 세상을 밝히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기억

레빈의 성장단계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소설이 거의 끝나갈, 무렵 키티가 아이를 낳고 모든 것이 정말 좋아진 때에 그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절망한다. 그는 무얼 해도 허무하고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레빈은 고민하고 좌절하다가 어느 날 어떤 농부를 만나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삶은 그냥 사는 것이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레빈은 선하게 사는 데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실제로 톨스토이도 레빈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가 결국 발견한 해답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것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 모순적인 어법을 통해서 현재를 현재로 느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반드시 죽을 거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지금 현재와 오늘이 더욱 소중해진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죽음을 미워하고 분노하는 대신 죽음을 기억하는데서 답을 찾았던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면 현재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한 순간순간이 삶의 소중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길」에서 이렇게 말한다."오늘 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 오늘 밤까지 살라는 것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바로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영원히 살라는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유한한 삶에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이다. 또한 죽음을 기억하는 삶이란 변화를 수용하는 삶을 뜻한다. 즉 시간과 함께 살아라는 뜻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인간은 변화를 거부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싫어한다. 상대방에게서 변함없는 사랑을 기대하지만 사랑은 변하고, 늙고 싶지 않지만 날마다 늙어간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기억하면서 산다면 이런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시간과 함께 산다면 시간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가차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지나간 상처를 치유해주는 힘이자 신의 선물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뒤안길에는 상처, 고뇌, 욕망, 배신, 좌절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런 것들도 흘러간다. 그리고 결국 이런 것들도 시간의 치유하는 힘에 의해서 치유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인간은 성장한다.

 

레빈은 소설의 말미에서 이것을 이해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나의 생활 전체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매 순간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슨 일이든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레빈은 아내와 또 싸울 것이고, 하인에게 소리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빈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아간다면 매 순간순간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고 더 이상 삶은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소설은 끝이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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