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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대심문관

by 글랜필드 2021.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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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줄거리를 읽지 않은 분들은 링크에서 보고 오길 바랍니다

2021.07.28 - [문학/도스토예프스키] - 도스토예프스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줄거리

 

도스토예프스키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줄거리

소설 속 주요 사건은 19세기 중반 카라마조프가에서 일어난 친부 살인사건이다. 1860년대 러시아 소도시의 지주인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등장한다. 그는 졸부로, 술집과 고리대금업 등 악

glenfield.tistory.com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역대 쓰인 소설 중 가장 장엄한 소설이고 '대심문관'은 세계문학사의 압권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허무론적 무신론자인 둘째 아들 이반이 신앙적으로 순수한 동생 알료샤에게 자신이 창작한 극시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기술한 것이 바로 '대심문관'이다. 수도사인 알료샤 또한 이 이야기를 듣고 고통에 빠지게 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진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16세기 수천 명의 이단들이 화형을 당하던 종교재판이 한창인 스페인 세빌라 지역의 현장에 예수가 재림한다.

1500년 전 자신이 이스라엘에서 교리를 전파했을 당시와 같은 복장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재림한 메시아인 것을 알고 그에게로 나아온다. 당시 화형을 집행했던 종교 재판관인 대심문관은 재림한 예수를 알아봤음에도 예수를 옥에 가두게 된다. 그리고 '왜 다시 나타나서 우리를 방해하느냐!' 라는 논조를 가지고 예수를 심문한다. 하지만 예수는 대심문관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식의 심문을 끝낸 대심문관에게 예수는 조용히 일어나 그의 입에 키스를 하고 장면은 끝이 난다. 그러면 대심문관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보자. 

대심문관

대심문관은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는 내용을 두고 예수를 몰아세운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굶주리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사탄이 나타나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을 빵으로 변하게 해라 그러면 니 영혼 육체가 만족과 기쁨을 얻지 않겠느냐"라고 첫 번째 시험에 들게 한다. 이것은 인간들에게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라는 요구이다. 두 번째 시험은 "성 맨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이다. "만약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하느님이 보낸 천사들이 이 손으로 너를 받쳐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에게 신비 또는 기적을 제공해라는 뜻이다. 세 번째 시험은 "내 발밑에 무릎을 꿇으면 지상의 모든 왕국과 영광을 주리라"는 제안이었다. 이것은 권세 즉, 사람들이 경배하도록  만드는 힘을 요구한 것이다. 예수는 인간에게 필요한 세 가지 물질, 신비, 권세를 제공하는 것을 거절한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이러한 것들을 제공했을 때 이런 것들의 지배하에 인간들이 자유의지를 상실하고 그것들에 의한 노예상태에 빠지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심문관은 "인간의 존재는 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대하지 않소!". "인간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고 향유할 능력이 부족해서 오히려 빵(물질)의 유혹, 기적(신비)을 요구하는 유혹, 그리고 권력에 귀속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고, 또 이것을 거부하기란 인간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대심문관은 말한다. 대심문관은 자유를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들을 위해 악마가 제안한 그 세 가지를 중세의 교회가 사들여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세계를 통합하고 사람들을 노예화함으로써 인간의 종교전쟁과 기근 등 자유가 주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빵을 받으면서 우리가 그들의 빵을, 그것도 바로 그들 자신의 손으로 획득한 빵을 그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가져간다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며, 그럼에도 그들은 빵 자체보다는 그 빵을 우리의 손에서 받고 있다는 그 사실에 기뻐 날뛸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재림하여 이렇게 만들어 놓은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지상은 지옥이 될 것이기에 대심문관은 예수를 화형 시키겠다고 선언한다.

"당신(그리스도)은 어째서 우릴 방해하러 온 거요? 난 내일 형을 선고해서 가장 사악한 이교도로서 당신을 화형에 처할 것이오. 다시 말해 두지만은 내일이면 당신은 순종하는 양 떼들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은 내 손짓 하나로 당신을 불태울 화형대 속에 불타는 장작을 던져 넣을 것이오. 나는 내일 당신을 화형에 처하겠소. 이것으로 할 말은 다 했오".

듣기만 하던 예수 그리스도는 대심문관의 입술에 조용히 그의 입술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대심문관은 놀라서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문쪽으로 다가가서 "어서 나가시오!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오! 앞으로 절대 찾아오면 안 돼요 절대 절대.."라고 말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대심문관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 양심의 자유만큼 '짐'스러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대심문관은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결정을 기쁜 마음으로 믿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지금의 끔찍한 고통과 거대한 근심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기 때문이지."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인간은 무력하기 때문에 자신을 이끌어줄 강력한 힘과 물질적인 풍요를 갈망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인간이 집단주의화, 전체주의화가 되는 이유인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자유를 파괴시키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대심문관의 논리를 듣던 예수 그리스도 또한 본인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관점을 내세워 충분히 논리 대 논리로 논쟁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는 그 대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입맞춤은 상호적인 사랑과 이해에 기반한 것이었다. 대심문관 역시 역설적이지만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안티유토피아를 건설했던 것이었고 그렇기에 이 마저도 예수는 사랑으로 품어 주었다는 말이다.

 

다음 줄거리를 말하자면 이반은 자기 때문에 형이 살해당했다는 죄책감에 정신분열까지 와버린다. 이 고통스러워하는 이반에게 알료샤는 사랑과 애원을 담아 "아버지를 죽인 건 형이 아니야!"라고 외친다. 이렇게 대심문관은 무신론자 이반과 연결이 가능하고 예수는 수도자 알료샤와 연결이 가능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혼돈-이해-용서-화해-구원 이렇게 이어지는 신약의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심문관 이야기 안에는 당시 러시아에 퍼지고 있던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인텔리겐차들의 폭력적인 혁명에 대한 비판, 하느님의 이름으로 종교재판을 행한 기독교의 폭력에 대한 비판, 구원의 문제, 인간의 자유 문제, 무신론 문제, 교회의 가르침이 아닌 진정한 성서의 진리 등등 이것들 말고도 너무나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지옥과 같은 시베리아 감옥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리스도적 인간 구원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묻어 있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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